피비, 향양과 함께 산기슭에서 출발해 처음부터 대나무벌레, 노린재, 밑들이메뚜기의 공세에 깜짝 놀랐습니다. 다행히 겨울은 벌레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가 아니라서, 이후로는 무당거미와 왕사마귀 알집 외에는 더 이상 무서운 벌레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길을 가며 고추냉이 맛이 나는 한련화를 맛보고, 운남포플러의 수지 향기를 맡고, 익지 않은 메밀을 씹어보고, 레고 블록 같은 속새를 떼어 눈썹에 붙여보기도 했습니다. 보글보글 솟아오르는 샘물을 보고, 유칼립투스, 초피나무 잎, 쑥, 레몬그라스 잎을 손으로 비벼보기도 했죠. 쐐기풀과 모시풀의 차이점을 열심히 배우고, 지천으로 널린 크로프톤 잡초와 그 천적인 파리의 벌레집도 관찰하며... 내내 정신없이 노트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즐거웠던 건 얌전한 대나무벌레 모델을 우연히 만난 것이었습니다. 제 팔 위에서 5분 동안 얌전히 멈춰 있어 주어서 여유롭게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거든요. 벌레를 정말 무서워하는 사람으로서, 제가 벌레를 귀엽다고 진심으로 느끼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성격이 운명을 결정하는 건지, I형 인간과 I형 벌레 사이에 어느 정도 공감이 있었나 봅니다).
햇살 가득한 날 산길을 걸으며 피비와 향양의 친절한 식물 설명을 듣고, 함께 걷는 노부부가 즐겁게 사진 찍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오랜만에 색연필을 들어 보고 들은 것들을 그려보며, 5시간이라는 시간이 천천히 그리고 몰입감 있게 흘러갔습니다. 제 마음속에 고요하고 아름다운 흔적을 남긴 시간이었어요.
도시로 돌아가서도 호기심 어린 시선을 잃지 말아야겠어요~